에쿠니 가오리라는 작가는, 뭐랄까, 정말 독특한 스타일의 작가다. 그 독특한 간명한 문체와, 툭툭 끊어지는 진행 때문에 사실 팬 만큼이나 안티도 많은 작가이기도 하고 ... 또 스타일만 독특한 게 아니라 소재에 있어서도 나름대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거. 어찌보면 겉으로는 엄청 차가운 듯한 대화에 쓸쓸한 분위기를 잔뜩 실어놓다가 또 어느순간 그런 주인공을 따땃한 시선으로 쳐다보다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에는 이별도, 불륜도 밥먹듯이 등장하곤 하고 말이지. 결혼도 하셨다는데, 이 작가의 연애관이 참 알겠다가도 모르겠더라.
한때는 이 작가의 그런 점이 재미있어서 거의 당시에 나와있는 모든 책을 섭렵하다시피 읽다가, 또 알겠다가도 모르겠는 그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아 접어놓은지 좀 되었는데, 우연히 국제도서전에 갔다가 소담출판사에서 무더기로 책을 지르다 보니 걸린 책이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들이었다. [장미 비파 레몬], 그리고 [당신의 주말은 몇개입니까] [좌안]과[우안].
지금 [장미 비파 레몬]를 다 읽고 [당신의 주말은 몇개입니까]를 어느정도 읽은 수준인데, 이 두권에서 조금 더 변화한? 아니면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에쿠니 가오리의 연애관과 결혼관을 찾아볼 수 있었더란 말.
그나저나, [장미 비파 레몬] 은 사실 소설이 좀 복잡하다. 일본식 이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 책 읽다가 한페이지 넘길 때마다 이름이 헷갈려서 조금 읽다가 덮어버릴 정도로 이름들이 난무하고 관계들도 어지럽다. 게다가 각각의 인물에 맞춰서 각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으니 집중해서 한번에 읽어내리지 않으면 다음에 볼 때 헷갈릴 지경일지도. 우리, 소설 이렇게 쓰지 말자구요.. ㅠ
그건 그렇고, 누구의 이야기를 보느냐에 따라 결혼이나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다 틀리게 들릴 수도 있다는 게 이 소설의 독특한 점이랄까, 그렇다. 도우코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서 읽은 독자와, 레이코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서 읽은 독자, 그리고 츠지야에 맞춰서 읽은 독자.. 어떻게 읽는가에 따라 "이놈의 결혼은!" 할 수도 있고 "역시 배우자밖에 없당께" 할 수도 있겠고, "역시 사랑은 불타올라야 제맛" 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응?) "역시 결혼 외 연애는 지나가는 바람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하기도 하겠다..
그런데, 또 여기 나오는 부부들이 다 불륜을 겪거나 또 이혼을 하거나 하기도 하지만, 에쿠니 가오리가 절대로 결혼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혼한 에미코는 끊임없이 남편의 부재를 느끼고, 불륜을 밥먹듯 하는 츠지야는 결국 아내가 제일인가 하고 있단 말이지.. ^^;;
종합해보면, 아무튼 에쿠니 가오리 본인이 쓰는 소설은 불륜과 연애가 난무하고 또 이로 미루어 볼 때 작가 본인이 자신의 결혼생활에 가끔 밋밋함을 느끼는 듯 하지만, 그래도 꽤 결혼하고 남편하고 사는 생활을 즐기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 믿거나 말거나 진실이거나 말거나.. ^^
작가가 지어준 10명이 넘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헷갈리지 않고 읽을 자신이 있다면, 간만에 한번쯤 읽어보라고 해줄 만한 소설이 아닐까 싶다. 오랜만의 포스팅은 결국 책으로 시작합니다. ^^;;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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