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리나라 작가중에 좋아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박완서님과 김훈님을 꼽겠다.
박완서님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하고
김훈님의 글은 문장의 예술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렇다.
"자전거여행" 이라는 책은
내가 읽은 책 중에서
문장이 가장 유려했다.
사실 조금 피곤하게 읽기는 했지만
그만큼 문장을 잘 쓴 글을 이때껏 읽은 적이 없었다.
그의 글은 마음에 직접 작용한다. 글이 곧 감정이고, 사물이 될 수 있을 듯만 하다. 마음속에 그 사물과, 그 사물을 보는 작가의 감정이 직관적으로 그려진다.
상황과, 사물에 대한 묘사를 그렇게 해내는 작가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사실이 뿌듯할 정도. 그 뭐랄까, 우리말로 할 수 있는 모든 표현을 다 알고 있는 듯한 그의 글은 글 자체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
얼마나 세상을 관찰하고, 이해하고 있으면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김훈님의 글은 나를 더욱 더 책과, 여행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이 "칼의 노래" 를 읽었는데
자전거여행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할 것 없는 문장.
그리고 빠져들 수밖에 없는 구성.
이순신이라는 인물의 내면세계를 "칼" 로 표현한다거나.
그리고 "적"과 "임금" 사이의 자기의 존재를 규정하고, 그 사이에 흔들리는 이순신의 마음을 묘사한다거나 하는 표현은 충격적이고 섬세하다. 이런 글은 일찌기 본적이 없다.
"임금은 장수의 용맹이 필요했고 장수의 용맹이 두려웠다. 사직의 제단은 날마다 피에 젖었다."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나는 나의 충을 임금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우고 싶었다. 적의 적으로서 죽는 내 죽음의 자리에서 내 무와 충이 소멸해주기를 나는 바랐다."
이런 글들을 볼때면 김훈이 우리나라 작가여서, 번역을 거치지 않고 글의 축축한 느낌이 그대로 와닿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적을 죽이면 적은 백성을 죽였고 적이 나를 죽인다면 백성들은 더욱 죽어나갈 것이었는데, 그 백성들의 쌀을 뺏고 빼앗이 적과 내가 나누어 먹고 있었다. 나의 적은 백성의 적이었고, 나는 적의 적이었는데, 백성들의 곡식을 나와 나의 적이 나누어 먹고 있었다."
"나는 내 무인된 운명을 깊이 시름하였다. 한 자루의 칼과 더불어 나는 포위되어 있었고 세상의 덫에 걸려 있었지만, 이 세상의 칼로 이 세상의 보이지 않는 덫을 칠 수는 없었다. 한산 통제영에서 그리고 그 후의 여러 포구와 수영에서 나는 자주 식은땀을 흘렸고, 때때로 가엾고 안쓰러워서 칼을 버리고 싶었다."
"너를 죽여 마땅하지만 죽이지는 않겠다,고 임금은 멀리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면사' 두 글자 속에서, 뒤척이며 돌아눕는 임금의 해소기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글자 밑의 옥새는 인주가 묻어날 듯이 새빨갰다. 칼을 올려놓는 시렁 아래 면사첩을 걸었다. 저 칼이 나의 칼인가. 면사첩 위 시렁에서 내 환도 두 자루는 나를 베는 임금의 칼처럼 보였다. 그러하더라도 내가 임금의 칼에 죽으면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고 내가 적의 칼에 죽어도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다. 적의 칼과 임금의 칼 사이에서 바다는 아득히 넓었고 나는 몸 둘 곳 없었다."
"내 어깨에는 적이 들어와 살았고, 허리와 무릎에는 임금이 들어와 살았다. 활을 당겨 표적을 겨눌 때 나는 내 어깨에 들러붙은 적을 느꼈고 칼의 세를 바꾸려고 몸을 돌릴 때 나는 내 허리와 무릎 속에서 살고 있는 임금을 느꼈다. 시린 무릎으로 땅을 온전히 딛지 못할 때도 내 몸은 무거웠다.
적과 임금이 동거하는 내 몸은 새벽이면 자주 식은땀을 흘렸다. 구들에 불을 때지 않고 자는 밤에도 땀은 흘렀다. 등판과 겨드랑과 사타구니에 땀은 흥건히 고였다. 식은땀은 끈끈이처럼 내 몸을 방바닥에 결박시켰다. 나는 내 몸이 밀어난 액즙 위에서 질퍽거렸다. 잠에서 깨어나는 새벽에, 나는 내가 어디에 와서 누워 있는지 알지 못했다. 밤에 바다로 나아가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겨드랑 밑에서 땀이 식는 한기에 소스라칠 때 내 의식은 식은땀과 더불어 내 바닷가 수영 숙사로 돌아왔다.
군법을 집행하던 날 저녁에는 흔히 코피가 터졌다. 보고서 쪽으로 머리를 숙일 때, 뜨거운 코피가 왈칵 쏟아져 서류를 적셨다. 코피가 터지고 나면 머릿속에서 빈 들판이 펼쳐지듯이 두통이 났고 열이 올랐다. 종을 불러서 옷을 갈아입고 자리에 누우면, 실신하듯이 밑 빠진 잠이 쏟아졌다. 나는 바닥 없는 깊이로 떨어져내렸고, 잠에서 깨어나는 새벽에는 식은땀에 젖었다. 의식이 다시 돌아올 때 나는 어둠 속에 걸린 환도 두 자루를 응시하고 있었다. 임금의 몸과 적의 몸이 포개진 내 몸은 무거웠다."
이런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확실히 소설가라는 재능은 타고나는 부분이 있음이 느껴진다니깐... ^^;
근래 읽은 소설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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